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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0 일어서라 (눅7:11-17)
작성일 :  2022-02-24 13:26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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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라 (7:11-17)

 

흔히 동양문화를 불교의 부처처럼 앉아있는 정적(靜的)문화라 하고 서양문화는 그리스도처럼 서있는 동적(動的)문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방 문명권에서는 발명, 발견 등 과학적 발달이 매우 앞서 있는데 비하여 동양 문명권에서는 이 방면에 상대적으로 미약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입상(立像)의 종교인 기독교와 좌상(座像)의 종교인 불교의 영향임이 확실합니다. 우리 성경에 일어서라, 일어나라, 걸어가라는 말들은

 

. 자유하는 종교임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충만을 입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갈 때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의 삶을 영위하던 자에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걸으라는 말은 앉은뱅이 상태에서 일어서서 걸어 다녀라는 뜻입니다. 마침내 그는 일어섰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갔습니다(3:6-10). 기독교는 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출생한 영적 불구자를 일으켜 자유케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그에게 묻기를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신 후 이르시기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는 38년간의 기나긴 병고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5:1-9). 주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실 때입니다. 동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몰려와 용신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동리에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병자가 있었는데 그의 벗들이 그를 들것으로 운반하여 지붕을 뚫고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했습니다. 그는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나갔습니다(2:1-12). 기실 인생은 반신불수입니다. 육은 살았으나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언급된 병자들은 사실상 당시 영적 이스라엘의 참상을 드러내 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병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은 진리가 주는 자유입니다(8:32). 주님은 이러한 병자들에게 일어서라,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죄로 죽은 인생을 일으켜 세우는 기독교입니다.

 

. 부활의 종교를 나타냅니다.

 

나인성에 살던 한 외로운 과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음 앞에 빼앗기고 슬퍼했습니다. 이 비참한 장면을 보신 주님은 죽은 자의 관을 붙잡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죽음의 관에서 일어나 앉고 말도 했습니다. 이 놀라운 부활의 기운이 온 성에 소망의 불을 피웠습니다. 죽은지 이미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불렀습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므로 예수께서 그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신비한 부활의 기운이 온 베다니를 흥분케 했습니다(11:17-44). 기독교는 누워있는 사람, 묻혀 썩는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종교입니다.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혼이 죽어있는 자를 명하여 부활시켜 영혼을 온전케 하는 종교입니다.

 

. 사명의 종교임을 나타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중에 있어 고난받는 동족과 함께 슬픔을 씹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인자야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노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2:1-2). 이것은 사명의 소리입니다. 주님은 일을 맡기실 때 누워있는 자, 앉아있는 자에게 맡기지 아니하십니다. 일으켜 세우고 일을 맡기십니다. 다니엘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라는 창조주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종교 의 세계역사는 바다도, 육지도, 하늘도 모두 정복해 내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는 서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서서 일한 자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도 서서 못박혀 죽었습니다. 일하는 자세로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 자체도 일(대속사역)이었습니다. 그는 무덤에서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아걸고 앉아있던 겁쟁이 제자들을 일으켰습니다. 성령의 불로, 말씀의 세력으로, 주님 자신의 서 있는 증거로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무덤에 찾아와 그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24:5)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서있는 자를 누운 곳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리아를 맞을 때 누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 있었습니다. 서서 움직이고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실의와 낙망의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문을 박차고 예루살렘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60:1) 이것이 곧 입상(立像)의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일어나는 자에게 역사를 맡깁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도여 일어나라! 온갖 죄악의 질병에서 일어서라! 어둠의 죽음에서 일어서라! 그리하여 사명에 전진하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있으라(12:35)고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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